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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자료 & NEWS2005/08/18 11:22
"버마의 민주화는 아시아의 미래다"

"이주노동자 방송국" 윤혜숙

버마의 역사는 영국으로부터 독립되기 전 영국제국주의에 대항한 저항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1920년 전국대학생의 항쟁으로부터, 1930년 전농민의 무장항쟁이 있었고, 1939년에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버마 중부 유전지역에서 시작되어 농부들과 학생, 승려들이 힘을 합쳐 영국정부에 큰 타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후 아웅 산 장군이 영국제국주의자들과 일본전제주의자들에 대항하는 동안, 버마의 지도는 항거와 투쟁이라는 새지형도를 만들어갔다. 그 중심엔 언제나 버마 민중의 함성이 있었고, 민주와 자유에 대한 염원은 분출을 준비하는 활화산처럼 요동쳤었다.

이러한 힘은 1962년 대학생들의 항쟁과 1974년 우 탄트의 반기로 결집되어, 1988년 군정권이 펼치려는 폭력과 독재의 양날개 위로, 전국가적 민중봉기라는 화살을 쏠 수 있었던 것이다.

** 버마와 닮은 현대사를 경험한 한국이 더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

지난 8월 8일(월)은 1988년 버마 군사전제정치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수만의 버마 국민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생명을 희생했던 날로, 올해 17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 국가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에서는 '버마 민주주의와 한국의 역할'이라는 제목 아래 ‘8888 민주항쟁 17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토론회는, NLD 한국지부 회장이 버마 민주주의 지지운동 17주년 기념 공동성명을 인사말로 대신한 후, 현재 APEBC 버마난민어린이 교육지원단체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마웅저 씨가 나와, 버마 민주화운동과 한국 시민사회의 연대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웅저 씨는 서두에서 “버마와 닮은 현대사를 경험한 한국이 버마를 세계 최빈국, 불법체류자를 많이 보내는 나라로만 인식하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8888민주항쟁과 버마의 현대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 후, 버마 민주화세력과 한국에서 활동 중인 민주화 운동의 조직과 현황에 대해 발표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시민사회와 버마민주화운동이, 어떤 접점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발표에서 “희망의 원리는 바로 연대이며 연대는 바로 입장의 동일함이다. 또 연대는 함께 한 곳을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지원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한국이 60~70년대 혹은 80년대를 살아내면서 가장 원했던 것을 우리 또한 원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18에 광주를 방문했을 때 광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오늘 버마에 있는 민중들은 그날의 광주사람들처럼 하루하루 지옥과 전쟁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버마는 아시아의 한 국가만이 아니다. '한국의 과거이고 또 다른 아시아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부탁했다.

이어진 순서는, NLD에서 노동부 국장으로 활동하는 조모아 씨가 NLD의 창립과정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외 민주화지원활동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모아 씨는 지난 9명의 버마 난민신청 거부에 대한 NLD측의 의사를 피력하며, “UN 총장은 버마내 소수민족과 국민들은 모두 난민이라고 규정하고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버마 정부와의 정치적인 사안으로 난민의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난민을 난민으로만 봐주기”를 간절히 요구했다.

**버마 내 한국기업의 가스개발은 ‘독나무에 물을 주는 격’

이 날 기념 토론회에서 가장 관심의 핵심에 놓여있던 사안은 바로, 버마 내 한국기업의 버마가스개발이 가져올, 버마 인권상황의 악화에 대한 문제였다.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활동가인 최미경 씨는, 한국기업이 버마군부의 돈줄이 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미얀마 석유&가스 기업(MOGE)은 버마정부의 에너지성(省)에 속한 공기업으로, 버마 안에서 수행된 어떠한 석유나 가스 사업은, 그 이윤이 버마 군대가 소유한 MOGE로 전달되게 되어 있다고 한다.

버마 정부는 슈에(Shwe) 사업으로 엄청난 연수입을 벌어들일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슈에 가스개발의 이익의 약 65%가 버마 군부로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슈에지역의 가스개발을 주도하는 있는 기업이 바로 (주)대우인터내셔널이다. 대우는 지난 2000년 8월 MOGE와 가스개발권에 대한 계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버마 서부인 아라칸지역의 벵갈만 해상에 위치한 A-1광구에서 가스를 개발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 후 대우는 2004년 1월, 슈에지역에서 우리나라가 약 6년간 쓸 수 있는 양에 해당하는, 가채매장량 4조~6조 입방피트의 가스층을 발견하였고, 두 번째 평가정 시추에도 성공하여, 2005년 6월 슈에 가스전의 매장량 분석과 개발계획 수립 등 버마 가스전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슈에사업에서 벌어들이는 이윤이 군대를 강화시킬 것이 뻔하고, 버마 국민들을 계속해서 억압하는데 필요한 자원으로 활용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2003년 UN HD report에서는 버마의 국가 예산 중 40%를 국방예산으로 쓰는 반면, 단지 0.4%만을 국민의 건강과 교육분야에 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국적 기업과 버마군정과의 관계는 버마사회주의 기치 아래, 사업국유화와 중앙집중계획경제정책의 실시로부터 비롯된다고 했다. 계획경제정책의 실시는 심각한 경제난을 낳았고, 버마는 1987년 세계최저개발국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이러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군부는 1988년부터 투자법 개정 등의 경제정책 개혁과 함께 적극적으로 외국자본 유치에 힘썼는데, 버마의 저임금의 노동력과 석유와 천연가스 등 버마의 천연자원에 관심을 가진 외국기업들이 버마군부와 공동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버마정부의 가장 주요한 수입원이 되었던 것이다. 외국자본은 현재 버마정부를 지탱하는 거의 유일한 기반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버마군부의 외국자본 유입은 버마군부독재화의 심화로 이어지고, 국민의 삶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1999년 버마 어린이들의 58%가 영양실조상태에 있고(월드비젼인터내셔널의 발표), 교육예산 또한 급격히 감소하여, 초등학생 나이의 어린이들 중 39%가 학교에 입학조차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특히 대학생들의 저항운동을 우려한 군부는 대학교육을 거의 폐지한 상태라고 한다.

** 미국의 유노칼로 대표되는 해외기업, 심각한 환경파괴와 인권유린 야기

버마민주화와 강제노동문제를 얘기하는 ‘영국버마캠페인’과 ‘국제자유노련’ 등은 버마에 투자한 해외기업은, 버마 군사정권 지도자들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고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고 있음을 주목했다.

이 두 단체는 버마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기업들의 목록 ‘더러운 리스트(dirty list)'를 공개했는데, 한국기업으로는 대우가 대표적이고, 효성, 현대, 한전, 한국가스공사, 엘지 등이 있다.

지난 2005년 5월에 열린 ILO총회에서는, 강제노동과 관련하여 버마가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버마정부가 정권유지를 위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만큼, 국민들의 강제노동 또한 빈발해졌음을 지적했다. 또한 무작위적인 천연자원 유출은 심각한 환경공해를 가져와 심한 토양 침식과 홍수 등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미경 씨는, 가스사업이 심각한 인권침해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된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유노칼을 지적했다. 1990년 초 버마정부는 미국의 유노칼사와 프랑스의 토탈사, MOGE와 야다나에서 예타건까지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 계약을 맺었다.

이 가스사업으로 마을 주민들은 강제노동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하루 일한 임금을 군인들에게 뺏기는 일이 일어나고, 노동자와 마을주민은 구타와 강간, 고문, 처형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사태를 감당해야 했다고 전했다.

그 후 유노칼사는 버마에서의 파이프라인 건설로 버마 국민들의 심각한 인권유린 사태를 방조했고, 부당한 강제노동을 통해 이익을 얻었다는 이유로, 미국법정에 소송이 제기되어 8년간 소송을 끌다가, 올 초에 법정외 합의로 합의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유노칼사와 버마정부의 이러한 인권침해의 문제는, 바로 한국기업의 가스개발 과정에서도 예상되는 바라는 사실이다. 슈에 파이프라인 공사사업은 야다나 지역의 3배 규모라고 한다. 따라서 이 사업은 그 지역주민들의 고통을 야기시킬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발제자 최미경 씨는 기업이 자국의 인권 노동, 환경 등에 대한 규제로부터 벗어나 다른 저개발국가의 상황을 이용하여 기업활동을 하는 것은 인권의 보편성 측면에서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인권까지 생각하면서 어떻게 기업활동을 하는가’라는 주장은 국제문제와 인권에 대해 미성숙한 시민사회임을 자인하는 태도라고 지적하며, 지속가능한 시민사회의 관심과 활동만이 '피묻은 이윤'을 얻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라며 발제를 마쳤다.

**군부독재의 탄압과 강제추방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국경지대 난민들

다음으로 이어진 순서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의 최현자 사무국장이 버마와 태국국경 난민지역인, 메솟지역의 난민들의 인권상황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국장은 버마에서 난민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군사정부의 탄압과 소수민족들의 땅이 개발지역으로 확정되면서, 그 땅에서 쫓겨나는 상황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버마정부는 개발지역에서 기한내에 나가지 않으면, 그 지역을 자유발포지역으로 정하고 움직이는 것은 모두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고 한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태국국경지역으로 내몰린 난민들은, 태국정부에 의해 강제 송환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강제추방에는 공식적인 추방과 비공식적인 추방이 있는데, 비공식적인 추방의 경우, 출입국을 통하지 않고 밀림지역에 버려지는 것이다.

현재 태국과 버마의 국경밀림지대에는 다수의 지뢰가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밀림에 버려진 난민들이 지뢰를 밟고 부상자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최국장은 또한, 태국정부의 난민정책이 소수민족간의 차별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밝혔다.

온족과 카렌, 카레니족들은 난민으로 인정받고 있으나,샨족, 파족, 오족, 와족, 팔룽족 등은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샨족의 경우는 마약을 생산하는 민족이라하여 난민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UNHCR도 이들의 난민지위 인정을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데, 이는 태국정부의 압력이 가장 큰 이유로, 이 때문에 수 만명의 미등록 난민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태국 국경지대에는 두 개의 사회가 유지되는데, 난민촌과 난민촌 밖의 도시지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버마민주화 활동가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탄압하기 위해 태국정부가 난민촌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한다.

태국의 이주노동자정책은 버마에 그대로 노출이 되고, 이것을 빌미로 버마정부는 민주화 활동가들과 난민신청을 한 이주노동자들의 버마내 가족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한다. 태국의 멜라캠프에는 만 명에서 오 만 명의 난민들이 수용되어 있는데, 대다수 난민들은 섬유회사에 다니고 아이들은 점심을 못 먹을 정도로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최국장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5번의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하는 곳, 슈퍼만 가도 가방과 몸수색을 하는 억압된 사회, 국가를 잃고 떠돌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난민촌 사람들에게 전세계적인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면서 발제를 마쳤다.

끝으로 NLD 한국지부 대외협력국장인 조샤린 씨가, 버마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책변경을 요청하는 글을 읽었다.

그는 “버마 속담 중에는 '독나무에 물 뿌리지 마라' 라는 말이 있다. 한국정부의 버마 투자 확대는 분명 독나무인 군사독재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이고, 이는 버마의 민주화 운동을 방해하는 행위”임을 강조하며, 국경지역과 소수민족 지역에서 발생하는 강제노역과 군인에 의한 샨족 627명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다. 또한 10대의 어린아이들이 노역에 끌려가고, 총을 들게 하는 현실에 대해 분함을 금치 못한다고 토로했다.

조샤린 씨는 버마군부정권의 힘을 더욱 증폭시키는, 한국기업의 투자사업을 중지할 것과 버마군부와의 동업관계를 청산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고향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일

토론회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해외민주화 활동가들의 버마내 지원현황에 대한 질문에 마웅저 씨는, “국내구호단체와의 접근이 어려워 자세한 상황조사가 살피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지원이 어려운 이유는 학교에 연필 하나를 지원하면, 군대에 총 한 대를 사주는 것과 같다”고 어려운 사정을 설명했다.

'피난처'에서 나온 정베드로 선교사는 국경지대에 대한 UNHCR의 협력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대해 최현자 사무국장은 “1992년 태국에 난민촌이 형성된 후, 태국은 임시거처제공의 의미일 뿐이었다. UNHCR은 태국정부의 압박을 받고 있는 입장으로, UNHCR의 난민신청 정보는 태국정부로 유출이 되고 그 정보는 그대로 버마정부로 흘러들어가는, 암묵적인 커넥션이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난민들이 난민촌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현상에 대해서는, 난민촌의 삶이 개, 돼지의 사육장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민간구호단체가 한 달에 한 번 주는 양식이 성인 10~15kg정도이고 캠프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어서 감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또 난민캠프내의 치안에 대해, 태국정부의 지원이 전무한 상태라 민간치안 만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안에도 브로커가 있어서 농장에 난민들을 소개하고, 돈을 떼어먹는 파렴치한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난민촌에서 태어난 아이가 벌써 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국적도 없이 무국적인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이미 삶의 지표를 잃은 것이나 다름 없음이다. 난민촌에서 사는 버마 이주여성은 한 달에 약 만원의 돈을 버는데, 이중에도 비자를 만들어 준다는 조건으로 4천원을 떼고 6천원을 임금으로 받는다고 한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 가난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일'이라고 했다.

2005년08월11일 00:57:35
Posted by 꼬 마웅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