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9일은 버마의 순교자 (Martyrs' Day )의 날 입니다.
1947년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버마의 독립을 위해 버마독립운동지도자 아웅산 장군은 영국의 수상인 애플리 수상과 회담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 회담을 근거로 이른바 ‘ 아웅산-애틀리 협정’에 발효 되며 양국의 대표는 서명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웅산- 애틀리’ 회담에 함께 참여했던 구정치인 우소(U Saw: 일본군 점령 이전 영국의 지배 당시 마지막 수상을 역임)는 아웅 산-애틀리 협정 서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단체를 결성하고 아웅산에게 대항하게됩니다. 결국 이러한 움직임은 아웅산과 독립 지도자 8명을 암살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8명의 지도자가 암살 당한 그날 '1947년7월19일'을 기념하여 순교자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게 됩니다.
사법부는 아웅산 장군과 독립 지도자 8명을 암살을 지시한 우소(U Saw)와 그의 하수인들에게 법의 심판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 암살 사건에 대한 완전하고 공정한 수사를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단지 우소(U Saw)가 아웅산 장군에 대한 불만으로 이런 일을 행했다고만 알려 지게 됩니다. 우소(U Saw)와 그의 하수인들에 대한 조사 과정에도 많은 의문의 죽음이 있게 됩니다.
버마 사회에서 아웅산 장군과 독립 지도자 8명에 대한 암살 사건에 대한 처리는 이후 버마 사회 내에 발생한 민간인집단학살이나, 친영파, 친일파 문제 등 과거청산을 완전하게 할 수 없게 되는 부담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영국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1941년경 애국젊은이들은 일본으로 가 특수 군사 훈련을 받게 됩니다. 영국과 일본 식민지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버마군대를 청산 하지 못한 것이 이후 버마 민주화가 더뎌지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군사 독재들은 강력한 공안기구들을 동원해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국가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것은 소수민족들과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가져오게 합니다.
버마는 1948년~1962년까지 14년간만 민주주의 국가였습니다. 이후 다시 군사독재의 길을 걷게 된 이유에는 왜곡된 현대사를 그냥 넘어가고, 독재의 잔재인 군대 청산을 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역시 민주화 과정에 청산하지 못한 많은 과거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의 과거청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한국 분들을 보고 배우면서 버마 민주화와 민주화 이행 이우에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철저한 과거 청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한번은 희극으로 또 한번은 비극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를 하지 못하는 청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늘 비극의 역사만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희극의 역사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1947년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버마의 독립을 위해 버마독립운동지도자 아웅산 장군은 영국의 수상인 애플리 수상과 회담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 회담을 근거로 이른바 ‘ 아웅산-애틀리 협정’에 발효 되며 양국의 대표는 서명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웅산- 애틀리’ 회담에 함께 참여했던 구정치인 우소(U Saw: 일본군 점령 이전 영국의 지배 당시 마지막 수상을 역임)는 아웅 산-애틀리 협정 서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단체를 결성하고 아웅산에게 대항하게됩니다. 결국 이러한 움직임은 아웅산과 독립 지도자 8명을 암살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8명의 지도자가 암살 당한 그날 '1947년7월19일'을 기념하여 순교자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게 됩니다.
사법부는 아웅산 장군과 독립 지도자 8명을 암살을 지시한 우소(U Saw)와 그의 하수인들에게 법의 심판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 암살 사건에 대한 완전하고 공정한 수사를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단지 우소(U Saw)가 아웅산 장군에 대한 불만으로 이런 일을 행했다고만 알려 지게 됩니다. 우소(U Saw)와 그의 하수인들에 대한 조사 과정에도 많은 의문의 죽음이 있게 됩니다.
버마 사회에서 아웅산 장군과 독립 지도자 8명에 대한 암살 사건에 대한 처리는 이후 버마 사회 내에 발생한 민간인집단학살이나, 친영파, 친일파 문제 등 과거청산을 완전하게 할 수 없게 되는 부담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영국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1941년경 애국젊은이들은 일본으로 가 특수 군사 훈련을 받게 됩니다. 영국과 일본 식민지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버마군대를 청산 하지 못한 것이 이후 버마 민주화가 더뎌지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군사 독재들은 강력한 공안기구들을 동원해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국가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것은 소수민족들과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가져오게 합니다.
버마는 1948년~1962년까지 14년간만 민주주의 국가였습니다. 이후 다시 군사독재의 길을 걷게 된 이유에는 왜곡된 현대사를 그냥 넘어가고, 독재의 잔재인 군대 청산을 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역시 민주화 과정에 청산하지 못한 많은 과거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의 과거청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한국 분들을 보고 배우면서 버마 민주화와 민주화 이행 이우에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철저한 과거 청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한번은 희극으로 또 한번은 비극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를 하지 못하는 청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늘 비극의 역사만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희극의 역사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