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웅저일기2013.11.26 00:28

안녕하세요! 저는 버마 난민 ‘마웅저’라고 합니다. 2005년 당시 난민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저와 8명의 친구들은 한국정부로부터 난민인정불허를 통보 았고 그 이후로 저희들은 유명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난민문제와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및 단체, 그리고 언론은 저와 친구들의 난민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과 연대를 해 주었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네요’라는 농담에도 저희는 웃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 한국정부는 저희들에게5일 안에 한국을 떠나라며 난민인정불허를 통보한 상태였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만 해도 난민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고 난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도 많지가 않았습니다. 해서 저희들은 더욱 많은 불안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장 버마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한국에서 10년 이상을 보낸 우리들은 어떠한 안전에 대한 보장도 없는 버마로 돌가 갈 수 는 없었습니다. 그때 몇 명의 사람들과 11개 단체는 우리 문제를 위해 나서고 한국 시민사회에 이 문제에 함께 해달라는 연대의 요청을 해주었습니다.

 

장상미(함께하는 시민행동), 황필규(공감), 정정훈(공감), 김성인(난민인권센터), 최원근(난민인권센터), 김규환(성공회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국제민주연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나와 우리, 버마님주화-부찌게,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성공회대 아시아 NGO정보센터, 아시아 인권문화연대, 피난처, 참여연대, 등은 “버마 민주화운동가들을 내쫓지 말라”라고 해서 한국 정부에게 요구하며, 한국 시민들에게 연대를 요청했습니다. 특히나 황필규(변호사)님과 아름다운재단 공감은 법률적인 문제에 대해 도와주셨습니다.

 

덕분에 언론과 많은 시민들은 난민문제에 관해 관심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도 난민문제에 대해 무관심 상태에서 벗어 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저희를 비롯해 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들은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2008년말에 한국정부로부터 난민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를 도와주신 모두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간의 고마운 인사와 함께 슬픈 인사를 전하고자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오는 12월초에 고향(버마)로 돌아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준비 중에 난민 지위를 반납 할 준비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가 난민지위를 반납하고자 하는 이유는......

 

공식적으로 난민지위를 받았으니, 공식적으로 돌려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물론 저는 난민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마의 시민으로 버마에 돌아가려고 합니다. 해서 제가 주어진 난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반납함으로 제가 버마 사회에서 시민 마웅저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어렵게 난민지위를 받았기 때문에 제가 난민 지위를 반납하는 것 역시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버마 상황은 정치적인 변화와 함께 시민사회에 여유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치적 변화가 아니라 버마 시민들의 실제적인 삶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작년 말에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저와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고 함께 해주신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한국에 있는 다른 난민들과 버마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는 제 친구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신 관심과 연대를 평생 기억하고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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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웅저
마웅저일기2013.11.21 13:12

안녕하세요, 장상미 선생님을 통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활동했던 버마(미얀마)사람 마웅저입니다. 모든 분들은 저를 기억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시민행동에서 2004년 9월 23일 인턴십을 시작한 때가 한국에 온지 10년째되는 해였습니다. 비록 인턴의 자격인긴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한국의 시민운동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을 통해서 또 다른 한국의 많은 시민단체들에게도 보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국 시민단체 역사에서도 함께하는 행동은 처음으로 이주민 출신을 받아주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민행동에서 일하기 시작한 몇 개월 동안 하루하루 제가 무엇을 했나 생각해 보았더니 잘한 일이라고는 점심시간에 밥을 잘 먹는 것 외엔 잘 한 일이 없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때 시민행동에 있는 선생님들은 절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지만 저는 생각할 때마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 당시 ‘함께하는 시민행동’에 제가 있는 것은 이주민사회와 시민단체사회에게 신기한 소식으로 되었습니다. 저를 받아주신 하승창(전 사무처장 님)과 ‘함께하는 시민행동’분들이 저를 바라본다는 생각을 하니 열심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바쁘게 일하고 있는 가운데 시간을 내주고 저에게 단체 활동 영역별로 설명을 하나씩 잘 해주는 것에 대해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정보인권, 좋은 기업, 예산감시 등 활동들에 대해 보고 느끼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버마 시민사회를 생각하면 당장 쓸 수 있는 교육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언젠간 시민행동에서 배운 것들이 버마 시민사회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2004년부터 2010년초까지 ‘함께하는 시민행동’에 있는 동안 하승찬, 오관영, 김영홍, 박준우처장이 사무처장 자리를 후배로 이양하는 과정을 잘 보고 배웠습니다. 매주 월요일 마다하는 회의는 저에게 민주적인 회의 방식을 배울 수 있게 된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에게 도움이 된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만,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저에게 눈에 볼 수 있는 것과 눈에 볼 수 없는 많은 도움들을 주었습니다.

 

2005년 3월 한국정부에게서 난민인정불허를 받은 당시에 하승창 사무처장님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많은 시민단체들과 연대하고, 인권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저와 버마 친구 8명의 난민인정불허처분 취소 소송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덕분에 2008년 말에 난민인정을 받아서 안정하고 자유롭게 살면서 하고 싶은 활동을 잘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2007년 9월 버마 국내 스님들과 시민들의 평화 행진하는 중에 군인들은 최루탄을 발사하고 총을 쏴 500명 이상 사상자가 발생했었습니다. 그 때에도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오관영 사무처장님은 시민단체들과 연대해서 저와 버마 이주민들과 함께 버마 대사관 앞에서 버마 군부에게 탄압 중단 및 평화적인 행진보장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2008년 ‘피스라디오 캠페인’통해서 버마의 평화소식을 한국 시민들에게 알리며, 한국 시민들에게 받은 후원금으로 버마 시민들에게 라디오를 보내는 활동도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하신 많은 시민들과 제일 고생하신 김현철 교수님, 이미희 강사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라디오가 없어서 소식을 구하지 못한 버마의 많은 시민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피스라디오 캠페인으로 아름다운재단 풀뿌리모금상 수상했습니다.

 

2010년초 저는 ‘따비에’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 동안 해왔던 활동 중에 버마 아이들 교육지원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 지원활동을 좀 크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니 단체를 운영해서 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늘 지지하고 지원하는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김영홍 처장님은 단체 운영에 대해도 큰 도움 주셨습니다.

 

오늘날 ‘따비에’는 4살이 되었습니다. 잘 걷고 있는 것은 곁에서 항상 보살펴주시는 박준우 사무처장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는 12월초에 버마로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늘 지원해주신 하승창 선생님, 오관영선생님, 김영홍 선생님, 박준우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모든 회원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살아가야하는데 저는 받기만 하는 느낌입니다.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말씀 밖에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한가지 약속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과거는 제 현재를 만들어가고, 여러분과의 현재는 저의 미래를 만들어간다구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에 보다 많은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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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웅저
마웅저일기2013.11.16 13:19

안녕하세요! 저는 버마(미얀마) 이주민 마웅저입니다. 저는 성공회대학교에 2000년부터 자주 방문했습니다. 2002년~2003년 노동대학 5기로 수료하고, 2004년~2006년 NGO 6기와 대학원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만난 학생들과 교수님들, 그리고 세미나, 식당, 도서관, 느티 나무 아래에서 만났던 학생들이 너무 많아 여기에 한 사람 씩 이름을 쓰기 힘들 정도있습니다.

 

‘노동대학 마동지’

1994년 말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동료들과 함께 버마 군부독재 반대 운동, 버마의 상황을 한국 사회에게 알리는 운동, 한국과 버마 연대운동, 그리고 한국 시민단체들에서 제공하는 교육들을 배우고 왔습니다. 성공회대에서 야간에 하는 노동대학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김규환(성공회대)선생님의 소개로 2002년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를 받아주신 노동대학 담당자들, 교수님들, 그리고 수업에 같이 참여하신 한국인 선배님에게 정말 감사드렸습니다. 노동대학 4기까지는 이주민 참여자가 없습니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저에게 동지로, 같은 학생으로 보고 챙겨주신 많은 분들의 덕분에 2003년에 성공적으로 수료했습니다. 교실에서 공부를 하지만 노동운동 현장에서 보고 배우는 것처럼, 또한 저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노동대학 덕분에 한국 사회와 세상을 좀 더 다양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노동대학에 같이 다니는 분들께서 제 이름를 ‘마 동지’라고 불여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신 붙여주신 ‘마 동지’라는 이름부터 소풍, 등산, 체육대회 등 여러분들과 함깨 한 시간들도 소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성공회대학교

2004년~2006년 NGO대학원에서 청강생으로 공부하던 마웅저 입니다. 그 당시 대학원에 다니는 분들은 저를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유는 그때까지 대학원에 공부한 한국 내 이주민이 저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말도 잘하지 못하는데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저 마웅저였습니다.

 

그 때 이 사람은 대학원에 왜 왔을 까라고 궁금해 하신 분들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궁금한 분들 대부분이 저를 응원과 챙겨주게 되었지요. 식사, 학용품 등으로 부터 수업 전과 후 과외 같은 일을 해주신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NGO6기 학생들은 제가 많은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발표와 토론에도 잘 참여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저는 정식으로 입학한 NGO대학원생은 아니었지만 '동기'로, 또한 외국인이라는 느낌 없이 받아주는 것 등은 저에게 평생 잃지 못한 추억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인권, 평화, 환경에 대해 보는 제 눈은 아주 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수업 시간에 교수님으로, 밖에서 가족처럼 챙겨주신 교수님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NGO 6기 학생들은 낮엔 단체에서 활동하고 저녁에 대학원에 다녔습니다. 활동하며 공부하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상황을 다시 생각 할 때 마다 너무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많은 분이 본인의 공부뿐만 아니라 제 공부에 대해도 많이 고민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수업에 나온 내용, 교수님들의 말씀하는 내용 등에 한자가 많이 있어서 제가 이해하기 너무나 어려운 것을 보고 시간을 내서 한자 공부를 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때 여러분과 제 관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는 저를 오빠와 형처럼 챙겨주고, 어떤 때는 동생이나 제자처럼 챙겨주고, 어떤 때 친구처럼 밥과 술을 같이 먹고 놀아주었습니다. 함께 한 모든 시간들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다시 갈 수 없는 시간들이라고 알고 있지만 생각 할 때마다 그 따뜻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모든 일에 대해 계산해서 행동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유 없이 제에게 돈, 시간, 힘을 지원해 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나라의 해방에 대해 중심으로만 행동해온 제게 여러분들이 주신 선의와 호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에게 배운대로 편견 없이 사람들 대하고, 댓가 없이 선의와 호의를 베풀도록 하겠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보여주신것들 잘 기억해서 그리 살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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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웅저
마웅저일기2013.11.15 14:01

 

 

행사에서 만나고 싶었습니다.
‘마웅저 집으로 가는 길, 송별회’, 2013년 11월 28일, 저녁 7~,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1층.

 

안녕하세요, 부천시민 여러분! 저는 부천에 살고 있는 버마(미얀마) 이주민 마웅저입니다. 지난 10월 7일은 제가 한국에 온지 19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부천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부천은 제2의 고향이었습니다. 또한 버마의 민주화를 바라는 많은 버마친구들이 부천을 근거로 활동하고 있어서 부천은 한국 내에서 버마 민주화운동의 성지라고 많은 친구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천이 제 고향이라면 ‘부천외국인 노동자의 집’은 제 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에게 한국말과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곳, 회사나 동내에서 생기는 실망과 분노들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한국 사회와 부천을 잘 볼 수 있게 문을 열어주는 곳, 아플 때 따뜻하게 안아주는 곳이 바로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이었습니다.

 

저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통해서 문화 도시 부천으로 시민들이 만든 과정에 버마 동료들, 이주민들과 같이 참여했습니다. 부천 시민들에게 아시아의 문화를 알리며, 한국 문화를 버마와 동남아시아에게 알리는 활동도 해왔습니다. 그동안 함께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분들과 부천 사람 마웅저로 키워주신 모든분께 정말 감사드렸습니다. 제가 2007년 제3회 ‘강희대 부천시민상’ 특별상자로,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이사로, 제 20대 김만수 부천시장 인수 위원회 자문위원으로, ‘버마 민주화와 태국 국경지역 난민 지원모임’ 운영위원으로 등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분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의 지지 없이 저는 이렇게 한국 내 이주민 역사를 만든 활동과 고향 버마의 민주화와 평화운동을 할 수 없다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통해서 만난 영담 스님(석왕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버마 사회의 아픈 문제나 친구의 아픈 문제를 가지고 찾아 뵐 때 마다 ‘알아서’라는 말씀을 하셔서 늘 도와주신 영담 스님은 저와 버마 이주민들에게는 부모와 같았습니다.

 

또한 제가 살아온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민의 시장으로 느끼게 된 원혜영 전 부천시장님께서 저와 이주민들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신 지원활동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만수 부천시장 인수 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올려 주신 김만수 현 시장님께 한 이주민으로서 정말 감사드렸습니다. 시장취임식 때 하신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말씀에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한 민주화운동가가 걸어가는 길을 잘 보여주는 신철영(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의 친 후배처럼 지내온 지 이제 10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2002년말부터 태국-버마 국경지역에 있는 버마 난민 아이들 교육지원 활동을 버마 이주민들과 해왔습니다. 2003년부터 이란주 선생님과 최연자 선생님 등 덕분에 한국 시민들도 버마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관심이 갖게 되었습니다. 2004년 신철영 선생님께서 3년의 약속(기획)이라는 제안으로 부천지역에서 버마 난민 아이들 교육지원 활동은 크게 진행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작으로 오늘 날까지 제가 버마 아이-청소년 교육지원 활동을 계속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철영 선생님에 대해 또 잊지 못할 것은 ‘너는 혼자가 아니라 힘내라’는 뜻으로 명절 몇 일 전마다 선물들을 가지고 찾아오신 신철영 선생님께 다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김범용 (전 부천외노 소장, 현 부처희망재단 이사)님과 5년~6년 내내 태국 국경지역에 있는 버마 난민 아이들 교육 지원 활동을 해왔습니다. 덕분에 많은 아이들은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 없는 그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처음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천 시민과 버마 사화에 연대에 대해 하나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백선기 이사님은 만났을 때 마다 저에게 친 동생과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인사하시고 늘 칭찬하신 덕분에 만났을 때 마다 새로운 힘납니다. 백선기 이사님께서 하신 ‘평화의 도시, 함께 사는 부천’ 활동을 잘보고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손인환 소장님(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께도 감사의 인사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주민들과 함께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을 이주민지원센터로 만든 과정에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해주신 소장님, 버마 평화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주신 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회의, 행사, 고리고 소풍까지 같이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살기 쉬지 않았지만 여러분들이 제 곁에 있다는 느낌으로 힘이 났었습니다. 또한 이주민들은 스스로 행복과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마음을 열어주신 여러분들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슬픈 인사말이 된지 잘 모릅겠습니다만 저는 12월초에 버마(고향)에 돌아갑니다. 부천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 말씀을 드리며, 그동안 살면서 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 드렸던 상처와 실수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너그러히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한가지의 약속은 버마에서도 평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한국과 버마 연대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버마 상황은 여유가 시작하고 정치적인 변화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변화나 안정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그래도 이제 저는 용기가 생겨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작년 말에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용기가 부족했을 때 난민으로 보호해주고 힘을 붙어주신 것을 평생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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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웅저